(2015년_소방공무원(공채)_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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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국가 부여와 고구려
(가) 부여 : 가장 북쪽인 만주 지방에 자리하였던(길림, 농안) 부여에는 왕 아래에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의 대가와 대사자, 사자 등의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따로 행정 구획인 사출도를 다스리고 있어서, 왕이 직접 통치하는 중앙과 합쳐 5부를 이루었다. 가들은 왕을 추대하기도 하였고, 수해나 한해를 입어 오곡이 잘 익지 않으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묻기도 하였다.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을 껴묻거리와 함께 묻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 부여의 풍속에는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이것은 수렵 사회의 전통을 보여 주는 것으로 12월에 열렸다. 이 때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겼으며, 죄수를 풀어 주기도 하였다. 풍습, 법률이 고구려와 유사해서 형사취수제 풍습이 있었으며,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으며,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에는 물건값의 12배를 배상하게 하고,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은 사형에 처하는 등 매우 엄격하였다. 산업은 농경과 목축을 주로 하였고, 특산물로는 말, 주옥, 모피 등이 유명하였다
(나) 고구려 : 부여와 마찬가지로 왕 아래에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각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렸다. 그리고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통하여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다. 혼인 풍습으로 혼인을 정한 뒤 신부집 뒤꼍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기서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인 서옥제라는 풍속이 있었다. 건국 시조인 주몽과 그 어머니 유화 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겨 제사를 지냈고, 10월에는 추수감사제인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아울러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다.
① 삼한에는 신지, 견지, 읍차, 부례 등의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다. 그리고 신성지역으로 소도가 있었다(제정분리).
④ 동예는 족외혼(族外婚)을 엄격하게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