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_9급_지방직(1회)_한국사(B)_2017년 0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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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시대의 경제상
고려 시대에는 국내 상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면서 송, 요 등 외국과 무역도 활발해졌다.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아라비아(대식국) 상인들도 들어와 수은, 산호, 향료 등을 팔았다.
또한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화폐가 발행되었다. 성종 때에는 철전인 건원중보(996)를 만들었으며, 숙종(1095~1105) 때에는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들었으나, 널리 유통되지 못하였다. 일반적인 거래는 여전히 곡식이나 삼베(저포)를 사용하였다.
② 통일신라기에 촌주가 3년마다 촌락의 토지 크기·인구 수·소와 말의 수·특산물 등을 파악하여 작성한 민정문서(신라장적)를 통해 촌락의 경제 상황과 국가의 세무 행정을 알 수 있었다.
③, ④ 조선 후기에 개성 상인인 송상은 송방이라는 지점을 설치하고 인삼을 재배·판매하였으며, 대외 무역에도 종사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또 이 때에는 지방의 정기시장인 장시와 포구가 새로운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장시에서 주로 활동하는 상인은 보부상인데, 보부상이란 봇짐장수와 등 짐장수를 말하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행상이었다. 포구를 거점으로 선상, 객주, 여각 등이 활발한 상행위를 하였다. 객주나 여각은 각 지방의 선상이 물화를 싣고 포구에 들어오면 그 상품의 매매를 중개하고, 부수적으로 운송, 보관, 숙박, 금융 등의 영업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