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_9급_서울시(1회)_한국사(A)_2019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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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흥왕의 업적
신라 법흥왕(514~540)은 병부의 설치, 율령의 반포, 공복의 제정 등을 통하여 통치 질서를 확립하였다. 또, 골품 제도를 정비하고 불교를 공인(527)하여 새롭게 성장하는 세력들을 포섭하고자 하였다. 더 나아가,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자주 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마지막 왕 구해왕)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532). 이로써 신라는 중앙 집권 국가 체제를 완비하였다.
㉠ 신라 지증왕(500~514)은 국호를 사로에서 신라로 바꾸고, 왕의 칭호도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쳤다(503).
㉡ 신라 진흥왕(540~576)은 한강 전 유역을 장악하고, 마지막 가야인 대가야를 정복하는(562) 등 활발한 정복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정복 활동에 관한 사실은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순수비(북한산, 창녕, 마운령, 황초령)를 통하여 잘 알 수 있고, 개국(開國), 대창(大昌), 홍제(鴻濟) 등의 연호를 사용하여 강력한 왕권을 보여주었다. 또한 거칠부를 시키어 <국사>라는 역사서를 편찬케 하여 기념하였다.
㉣ 울진 봉평비(법흥왕 11년, 524)는 법흥왕 자신이 동해안 지역인 울진에 순행하여 인근 지역 산성에서 화재사건의 책임자 처벌과 노인법(奴人法)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신라 6부의 존재와 국왕도 6부 중 양부(梁部)에 소속되어 되어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 인평(634~647)는 신라 선덕여왕 대의 연호이고, 이 때에 분황사(634, 모전 석탑이 유명)와 영묘사(635, 왕실 사찰)를 건립하였다.